2024. 6. 14. 19:12ㆍ내 영화의 모든 것/Movie News
★★★★☆
“벽 너머 무엇이 있는지 봤더니
그저 평범한 가족뿐이더라”

올해 기대한 작품 중 하나였던 <존 오브 인터레스트>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지만, 이 영화는 나에게 있어 성공했다 봐도 무방한 것 같다.
너무나 재밌게 봤고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영화관 불이 딱 켜지자마자 같이 본 동생에게 한마디 했다.
"영화 엄청 잘 만들었네...."
돌아오는 동생의 대답도 "그러니까요... 또 보고 싶을 정도예요"
아무튼 기대한 만큼 나에게 좋은 기억을 준(홀로코스트 말고... 이건 끔찍한 거) 이 영화에게 고맙기도 하고
기록으로 남길까 며칠간을 고민하다가 그냥 추억용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개인적인 느낌, 감상, 해석 등을 위주로 써보려 한다.
⚠️강. 력. 스. 포. 주. 의⚠️
난 분명히 경고했다...!!!!!!

일단 오프닝부터가 남다르다.
영화의 제목과 동시에 예고편에서 들을 수 있었던 특유의 소리와 함께 웅웅거리며 시작하다가
점점 제목의 겉에서부터 글자가 옅어지기 시작하며 음악도 가라앉는다.
바로 영상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 칠흑 같은 어둠이 몇 초? 몇 분?동안 이어지는데, 그때에도 꺼림칙한 소리는 계속 흘러나오다가
결국에는 멎어들면서 자연의 소리, 짹짹 거리는 새소리와 함께 영화가 밝아지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경고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소리에 집중해!!'라는 느낌과 동시에 칠흑 같은 어둠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 딱 좋았다.
(전혀 다른 장르이고 소리의 활용과 어둠의 활용은 조금 다르지만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잠시 떠올랐었다.
앞의 영화는 갑작스러운 소리의 끊김을 이용하여 자연의 소리에 집중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
뒤 영화는 초반 부분 칠흑 같은 어둠이 몇 분간 지속된다는 부분에서 떠오른 듯하다. 하지만 이 영화 존오인과는 크게 관련은 없다)
아무튼 첫 장면이 바로 사진 속 장면이다.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가족이 즐기는 피크닉을 멀리서 관망하는 듯한 롱샷으로 바라본다.
주변의 평화로운 자연도 동시에 카메라에 담음으로써 평온함을 가져다준다.
이때부터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너무나 일상적이기에도 다름이 없는데, 이러한 사사로운 장면들이 잔혹함을 더해주는 느낌이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되는 '루돌프 회스'의 집에서 일을 하는 House Keeping, 하인 들이라 보면 되는데,
이들은 후반에도 알 수 있겠지만 '유대인'들이며 어쩌다 이 집안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즉, 유대인들의 이야기는 관심이 없는 것이며 이들을 철저히 배제된 주변 인물로 인식이 된다.
다만, 저들에게 옷을 나누어 주는데 저 옷들은 모두 학살당한
유대인들 중 조금은 부자였던 그들의 옷을 가져다가 저들에게 나누어준다.
아무렇지 않게 원하는 옷을 가져가는 것을 보면, 이러한 일들이 익숙하다는 것과 저들 또한 살기 위해 어떠한 반응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급진 코트를 입어보는 루돌프 회스의 아내 '헤트비히'
이 영화의 두 번째 주인공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 여자가 얼마나 독한 여자인지는 나중에 보면 알게 될 텐데,
고급진 코트를 입고 수선을 맡기는 행동, 유대인이 죽어가는 장소를 '캐나다'로 지칭하며 거기서 옷을 가져왔다는 등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대단한 여자...
아무튼 이러한 사사로운 일상을 통해서 이들이 얼마나 차가운 존재들인지 좀 더 부각시켜주는 느낌이었다.

본격적으로 홀로코스트의 잔혹성을 시각적으로도 직접 눈치챌 수 있게 넣는다.
사진 속 보이는 어디 있다 튀어나온지도 모르는 하인이
'루돌프'가 집에 돌아와서 벗은 장화를 물에 씻는 장면이 나온다.
투명한 물은 금세 핏빛으로 바뀐다.
즉, 많은 유대인을 학살하고 돌아온 루돌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장면에서의 특이점은 집 안에서 들려오는 대사가 오버랩이 되면서 나온다는 것인데,
그 후로도 오버랩이나 꼭 오버랩이 아니어도 '?'를 띄우는 장면이 몇몇 나온다.

그것은 헤트비히와 그녀의 엄마가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유대인 하녀가 카메라 앞을 지나가면서 그 둘을 가린다.
원래라면 대화를 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카메라를 담아내거나 하는데, 여기서는 유대인 하녀가 지나가면서 신경을 거스르게 한다.
들리는 소리는 두 모녀의 대화인데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은 하녀이다.
이 장면은 보면서 '왜 저렇게 설정을 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후에 이동진 평론가님께서 말씀하시는 '청각과 시각의 충돌'이 일어나게끔 한 것이며, 우리 관객의 귀는 모녀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스토리를 따라가게끔 하여 유대인 하녀에 대한 존재를 퇴색시키기 위함이라고 하신 것을 보고
그렇구나 하고 했는데,
이 부분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에서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며 아직은 고민하고 있다.

'루돌프 회스'의 생일을 축하하러 온 나치 군인들이다.
여기서 나는 카메라 샷이 인상 깊었다.
원래 사람의 시야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더 넓게 보인다.
근데 여기서 카메라도 '광각 렌즈'를 이용한 느낌이 들었다.
보통은 저렇게 많은 인물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Z 축이 좁아 보이게 하기 위해서 '망원 렌즈'를 쓸법한데,
오히려 광각 렌즈를 통해서 엄청 넓게 루돌프 집의 마당을 찍는다.
그 뒤로는 루돌프의 생일을 축하하러 온 나머지 인원들을 통해
나치에서 그의 신분이 높은 것을 나타내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으나
오히려 그의 위압감이 더 잘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카메라의 활용은 여기서만 이용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떴던 스틸 컷인데 상당히 마당을 넓게 찍은 느낌이다.
모여있는 사람의 수에 비해 마당은 넓게 찍고 뒤 배경은 어둡게 처리했다.
초록색과 검은색의 대비되는 모습에서 '악'의 모습을 아름답게
모순적으로 강조하는 느낌이다.
마당 이야기를 해서 떠오르는 점은 헤트비히의 엄마가 휴식을 취하러 집을 방문하는 장면이 있다.
그녀가 의자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낮잠을 취한다.
눈 뜨고 일어났을 때 보이는 것은 유대인들의 시체를 태우는 곳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와 불꽃들이다.
그 장면을 이 렌즈를 이용하여 한 번에 카메라에 담는데 이 영화에서 제일 잔혹성의 느낌을 받게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매번 그 풍경을 바라보며 일광욕을 했을테니까.

영화의 후반 부분에 나오는 장면인데 나치 군인들이 파티를 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를 오버 헤드로 아래를 찍는 장면에서도 그렇다.
파티장을 엄청 넓게 찍고 들어오는 화면의 빛은 휘황찬란한 금색의 빛이며,
천장과 바닥까지의 거리가 멀어 보이게끔 하여 앞으로의 이 장소에
있을 일들에 대해 반감을 불러왔다.
그 외에도 루돌프가 전출을 간 곳에서의 회의할 때도 똑같이 위에서 아래로 찍는데,
프레임 양 끝단을 잘 보면 약간의 배럴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카메라 이야기가 나와서 조금만 더 해보겠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당연히 눈치챌 부분이지만, 이상하리만큼 중앙을 고집한다.
또한 애초에 처음부터 끝까지 어떠한 '클로즈업'은 볼 수가 없으며
관망하거나 몰래 훔쳐보거나 하는 듯항 장면이 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보통 '클로즈업'이나 '익스트림 클로즈업'등은 인물의 감정에 관객이 이입하기에 좋다.
하지만 이게 없다는 것은 그저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았으면 하는
감독의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는 위와 같은 것들을 볼 수가 없다.
사진만 봐도 짠 것 마냥 인물의 배치를 중앙에 해놓거나 양쪽에 평등한 분배를 해놓았다.
위에서 언급한 회의장에서도 원형의 테이블과 위아래로 평등하게 인위적으로 인물을 배치한 듯하다.
시각의 미(美)를 배제한 느낌.
투박하고 정적인 느낌을 통해 객관적인 시야를 원하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인물들이 공간을 이동할 때마다 쇼트의 변화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휙휙 돌아가는 쇼트에 눈이 어지러울 수 있는데 이러한 변화로 그들의 역동적인 모습이나 생각을 담은 건 아닐까 싶다.

조연들로는 그들의 아이들을 빼놓을 수 없다.
자라나는 환경은 너무나 중요하고 그 환경이 이들에게 미치는 것이
대화나 행동을 통해 적나라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이 어린 아들은 가지고 노는 장난감도 '군인' 장난감이다.
또한 창문 넘어 들려오는 유대인들의 곡소리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억압하는 군인들의 대사를 읊는데, 얼마나 많이 들었으면 그것을 외우고 있고 이 잔혹함이 일상이 되었는지...
안 봐도 뻔하다.
아이들의 행동에서 제일 충격적인 장면은 '가스실'을 연상케하는 장면이었다.
그전에 '헤트비히'가 화초를 키우는 온실(?) 같은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는 그 장면을 보고 '공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도 모자랄 판에 왜 저기서 담배를 피우는 걸까?' 싶었다.
설마 가스실을 상징하는 건가 하고 봤는데,
후에 큰 아들이 제복을 입고 작은 아들과 장난을 치는데,
그 온실에 작은 아들을 가두고 웃으면서 바라보는 장면과 동시에 작은 아들은 소리를 지르는데,
마치 가스실에 들어간 유대인의 비명소리처럼 들리는 듯했다.
소름이 끼쳤다.
< Intermission >
사용할 사진이 다 떨어져가서...ㅋㅋ...
그냥 이 밑으로는 쭉 줄줄줄 써보겠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많이들 '악의 평범성'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당연히 동의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벽 너머 들려오는 소리와 한정적으로 시각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그들의 대화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보통의 가족들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위 사진에서도 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그저 무언가 고민이 많아 보이는 '한 명의 회사원의 고뇌'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장면은 유대인을 태우고 나오는 굴뚝에서의 연기와 불꽃을 보며 담배를 태우는 장면이다.
어떻게 좀 더 효율적인 가스실을 만들지에 대해 고민하는 루돌프 회스라는 인물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나는 저 태우는 담배 또한 굴뚝으로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유유히 당연한 일상, 나의 직업이라는 이유로 고민을 털기 위한 담배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타들어가는 담배 끝에서 떨어지는 재는
유대인들의 뼛조각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뼛조각을 강가로 흘려보내고
그 강가에서 놀다 루돌프는 그걸 발견하고는 허겁지겁 뛰쳐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결국은 그도 한 명의 인간이라는 모습처럼 보였다.
또한 남편이 전출을 당해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빠져 하녀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 헤트비히도 그렇다.
그녀의 엄마가 벽 너머 아우슈비츠의 모습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서면서 편지를 놔두고 가는데,
그걸 발견한 헤트비히는 하녀에게 짜증스러운 말투로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고, 엄마의 편지를 태워버리는 모습에서도 본인 스스로도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듯한 사람으로 보인다.
다만, 그것을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루돌프와 헤트비히는 자식들에게 있어서는 정말 다정한 부모이다.
들려오는 새소리는 다 가르쳐 주고 싶어하고 갓난 아이에게 꽃의 이름을 설명해 주는 모습에서 볼 수 있다.
그들도 자식이나 가족들 앞에서는 한없이 정 많은 인간, 그런 악이
가득 찬 인간이 아닌 보통의 인간임을 강조하는 듯하다.

이 영화에서 내가 제일 의아해 하는 부분이다.
밤이 되면 한 소녀가 나오면서 유대인들이 먹을 수 있게
과일이나 식량 등을 몰래 땅에 숨기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 이 장면이 '야간투시경'으로 찍은 줄 알았는데 후에 보니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하여 찍은 장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헨젤과 그레텔>의 동화를 읽어주는 루돌프의 목소리가 오버랩 되며 함께 마치 과자를 놓는 듯 사과를 놓는 장면이 있다.
도저히 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나치들은 다 보고 있다'라는 의미로 처음에 받아들였으나,
이동진 평론가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이마를 탁 치게 되었다.
이 부분은 직접 평론가님의 말씀을 듣길 원하니 작성하지 않겠다.
그러나,
평론가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나는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술'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한다는 것인데... (물론 더 큰 의미도 따로 있다)
사실상 어떠한 절제와 통제를 통해서 홀로코스트의 잔혹성을 알려주기 위한 영화에서 저 장면이 정말로 필요했던 것일까 싶기는 하다.
내가 5점 만점에 5점을 주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고,
단순히 설명을 들었을 땐 그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가 떠올랐을 뿐이다.
끝으로 많은 관객분들이 뽑은 아마 이 영화의 제일 명장면이 되지 않을까 싶은 극 후반 장면이다.
루돌프가 계단을 타고 내려가다가 헛구역질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이 장면은 '악의 평범성'을 보여준 정말 유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의 마지막 장면과 똑같다.
실제로 감독도 <액트 오브 킬링>을 보고 느낀 것이 있다고 하였으니 오마주 한 것은 아닐까 싶다.
<액트 오브 킬링>에서의 주인공인 '안와르 콩고'라는 인물도 헛구역질을 하며 결국 토사물은 게워내지 못하고 연신 침만 뱉는 장면인데
루돌프 또한 그렇다.
그러다가 시점이 과거가 아닌 현재의 시점으로 바뀌면서 현재는 박물관으로 바뀌어 그때 당시의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신발이 쌓여져있는 장면과 동시에 관리인들이 청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화면이 어두운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작은 원형의 빛이 보이더니 문이 열린다.
아마 가스실에 갇혀있는 유대인이 닫힌 가스실 문을 바라보는 시점이지 않을까.
그리고 처음 유대인의 시점으로 보여준 장면이라 생각한다.
이 장면 이후로 '루돌프 회스'는 무엇인가 깨달은 거 마냥 빛이 없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며 사라진다.
나는 이 장면이 '나치=어둠'으로 해석해서 나치의 힘이 더더욱 강해지는 것으로도 바라보았고,
반대로는 빛이 들어오면서 문이 열리고 현재 아픔이 가득한 장소를 비춰주는데,
당연히 다시는 없어야 할 사건임과 더불어 언젠가 빛이 들어와 어둠을 이겨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튼 <존 오브 인터레스트>라는 제목의 의미도 '이익 지대'
혹은 '관심 지대'로 볼 수 있는데,
여기서 관심을 가지는 장소는 유대인들이 있는 아우슈비츠의 장소가 아닌 '루돌프 회스'라는 인물이 지내는 장소인 집부터 마당이라는 점.
소리를 통한 잔혹함을 전달해 주는 것은 벽 너머에 보이지 않은 피해자들의 아우성도 있지만
그들의 대사를 통해 은유적으로 전하는 아무렇지 않은 말들.
(예를 들어, 아우슈비츠 근처에 있는 꽃(혹은 나무)를 꺾지 마라.
그것은 그곳을 시각적으로 좋아 보이게 하기 위해 심어 둔 것이다 등...)
그리고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많은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 점.
초반 부분에 루돌프의 깜짝 생일 선물을 주기 위해 눈을 가리고 가는 장면에서 '물벼락이 떨어지는 것 아니겠지?'하는 대사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가 떠올랐다는 것.
그 외에도 '알랭 레네'의 <밤과 안개>, '클로드 란츠만'의 <쇼아>,
'라즐로 네메스'의 <사울의 아들>
위에 언급한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 악의 평범성을 보여준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액트 오브 킬링> 등,,,
정말 많은 영화들을 떠올리게 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역사적으로 잊어서는 안 될 일이고 위의 영화들을 통해 다시 한번 기억에 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않을까.
스토리가 지루하여 잠이 온다는 관객분들도 많았다.
컨디션의 차이일 수도 있고 이유야 다양하다 생각한다.
동시에 잠이 오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아니라,
그저 시대의 명령에 따르는 무식하고 바보 같은 인간들이고
그 인간들의 일상은 보통인들과 다름없이 똑같고 반복적이기에
지루하기 짝이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도 가끔 우리의 일상이 지루하다고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죽기 전 그들이 늘어놓은 변명들을 들어보면 비겁한 인간이나 다를 게 없다.
https://m.blog.naver.com/wauwow1/22347716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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